Thursday, November 3, 2011

진짜 원조 영광 굴비

진짜 원조 영광 굴비

조기풍어로 만선의 노래가락이 울려 퍼졌던 법성포는 조용한 가을을 맞고 있었다. 포구에는 배를 찾아보기 힘들고 바다는 한적하다. 굴비의 명성을 찾아 떠난 여행길. 유서 깊은 어촌은 변해버린 세월을 따라 조금씩 그 모습을 바꿔가고 있다. 도로 확장공사가 진행 중인 법성포 큰길은 정감 있는 갯내음대신 무수한 간판들로 가득 들어 차 잠깐 머리가 혼란스럽다.

원조 굴비. 진짜 영광 굴비. 100% 토종굴비. 순 법성포 굴비. 진짜 원조 굴비. 정말 법성포산 간 굴비.

눈에 거슬리는 큼직큼직한 간판에 디자인은 또 얼마나 거칠고 투박한지 400여 개의 상점이 다닥다닥 붙어 난민촌을 만들어 버린 굴비의 본고장 법성포 이미지는 시작부터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진실은 만들어 지지 않고 스스로 존재할 뿐인데 이렇게 요란스런 문구와 치장이 누구에게 믿음을 줄까 하는 안타까움이 목까지 차오른다. 모든 세속적인 것들이 다 불신의 대상이니 어촌사람들의 몸부림을 알 것도 같지만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굴비는 조기를 염장하여 말린 건어물이다. 굴비에는 재미난 역사가 전해진다. 고려시대 영광에 유배를 당한 이자겸이 왕에게 염장조기를 진상하면서 ‘선물은 보내도 굴한 것은 아니다’라는 뜻에서 굴비(屈非)라 적어 보낸 것이 이름의 유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영광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이지 사실(史實)은 아니다. 생조기를 짚으로 엮어 매달면 옆으로 구부러지면서 마르는데 이 모양이 ‘산굽이’ 같다 해서 ‘굽이’를 굴비라는 한자어로 표시했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국민밥상의 최고 스타로 꼽는 영광굴비는 20년 전만 해도 법성포 칠산 앞바다에서 한해 200톤씩 잡혔다. 봄날 곡우지절에 해풍을 쐬면서 어촌 아낙네들이 굴비를 말리고 다듬어 내다 팔면 남은 계절 온 동네가 풍요를 맛보았다. 한때는 남도의 거상(巨商)들이 영광에 몰릴 정도였으니 굴비는 오랫동안 법성포를 부촌으로 유지시켰던 보배다. 바다환경이 바뀌면서 이제 칠산 앞바다에서는 조기가 거의 잡히지 않는다. 흑산도나 추자도, 아니면 멀리 중국 어선들이 잡은 것들을 가져다 이곳에서 가공하는 정도이니 정확히는 ‘영광굴비’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진 셈이다.

먼 바다에서 잡혀왔을지라도 영광 덕장에서 말리기만 하면 영광굴비로 둔갑한다. 영광 해풍을 쐰 조기는 값이 열배가량 뛰어오르니 어디서 잡아 올렸는지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 영광상표만 붙이면 그만이다. 이러니 밀려드는 수요를 대기 위해 “진짜 100% 순 원조 영광굴비”가 무수히 만들어질 수밖에. 그 불편한 진실을 포장하려 애쓰는 법성포 사람들이 안쓰럽다. 차라리 ‘법성포 염장 굴비‘라고 하면 진실에 가까울 텐데. 이마저도 매기가 줄면 ‘영광 모시떡’과 ‘굴비 장아찌’ 가 굴비매상을 대신한다니 세월 앞에 진실도 무상해졌나 싶다.

주말 운동약속으로 자주 찾아가는 경기도 광주의 곤지암 읍내는 소머리 국밥집이 즐비하다. 여기서도 소머리 국밥의 진실공방은 치열하다. “원조, 순, 할매, 100%, 정말, 소머리 국밥” 마산 아구찜 동네나 영덕의 대게 고장, 고창의 풍천 장어집, 양평 해장국, 영종도 을왕리의 불타는 조개구이, 수원근교의 갈비촌, 소래포구의 새우젓, 전주 비빔밥. 부산 기장 미역. 울산 언양 불고기. 내가 다녀본 어지간한 고장의 맛집과 특산물은 거의 원조 공방이 뜨겁다.

하기야 도금이 순금보다 더 반짝이는 것이 요즘의 기술이고 세태이니 이들을 탓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요란하게 진실을 내세워서 우기는 것보다 알아서 평가하고 찾아주는 격조 있는 상혼이 잔잔하게 정착 될 수는 없는지 아쉽다. 전 세계 어디를 다녀 봐도 좁은 도로변에 철제 구조물을 박고 몇 미터 높이의 어마어마한 식당 간판을 매달아 놓은 고장은 본 적이 없다. 가짜 시비와 토종논쟁은 너무나 오래된 우리들의 풍토병이다. 이 불신에서 벗어나려면 간판이라도 높아지고 커져야 하겠지.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그러려니 한다. 까칠하게 따지면 꼴통이나 바보 취급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원조를 남발하다 보니 어느 곳이 진짜 원조이고 가짜인지는 알 길이 없다. 나도 상대방도 서로 믿으려 하지 않고 믿음도 주지 않는다. 어떻게든 일단 팔면 그만이다. 이렇게 속고 저렇게 속이며 산다. 내손을 떠나면 그뿐이고 우리 집 울타리를 벗어나면 모두가 남의 탓이다. 나는 진짜를 판다고 우기고 싶고 상대방은 가짜를 팔면서 네거티브하고 시비를 건다고 몰아붙이고 싶어한다. 불신이라는 단골메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가다가 얼마 후면 모두가 적당히 수준이 떨어지는 그저 그런 나라에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영광에서 사라진 ‘영광굴비’는 오늘도 전국으로 팔려 나간다. 전화주문과 택배, 온라인 송금의 삼각거래가 분주하다. 이런 마당에 진짜 원조를 보내달라고 주문하는 소비자가 있다면 천연기념물감이다. 진짜 원조 시비 바람에 몇 대를 이어 만들어진 간재비 ‘진짜 염장 영광 굴비’까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법성포 상점 이곳 저곳을 서성거리고 몇 번을 망설이다가 엉뚱한 모시떡만 사들고 돌아오는 여행길이 착잡하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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