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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November, 2011

목숨을 살리는 비타민C.. 하루여섯알은 먹자

목숨을 살리는 비타민C.. 하루여섯알은 먹자 이왕재(李旺載) 1955년 경기 평택 출생. 경기高•서울大 의학과 졸업. 同 대학원 의학 석•박사. 美 시카고大 의대 교환교수, 대한의사협회지 편집위원 등 역임. 現 서울大 의대 교수. 인명사전 마르퀴즈 후즈 후 등재(2004), 영국 국제인명센터(IBC) 세계 100대 의학자 선정(2005). 저서 「비타민-C가 보이면 건강이 보인다」, 「비타민 C 박사의 생명이야기」 등. 「비타민C 전도사」인 해부학과 교수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大 의과대학 기초연구동 213호에 있는 李旺載(이왕재•52) 교수의 연구실 한쪽에는 비타민C 박스가 어린 아이 키만큼 쌓여 있었다. 그는 나의 시선이 비타민 박스로 향하자 『인터뷰 마치고 갈 때 드릴 테니, 나를 보세요』라고 농을 던졌다. 李旺載 교수의 전공은 해부학이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돼 피살된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의 부검에 참여했다. 원래 병원에서 임상을 담당했는데,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이 싫어서 해부학과로 왔다고 한다. 자신의 전공과 달리, 그는 한국에서 「비타민C 전도사」로 알려져 있다. 「비타민C가 보이면 건강이 보인다」, 「비타민C 박사의 생명 이야기」 등 비타민C에 관한 著書(저서)를 多數(다수) 발간했다. 비타민C 연구에 대한 노력을 인정받아, 영국 국제인명센터 세계 100大 의학자(2005년)에 선정됐다. 국내에서 李旺載 교수가 비타민C 전도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 그는 모 방송국 아침 프로그램에서 비타민C로 당뇨병과 동맥경화를 완치한 자신의 부친과 장인•장모 이야기를 했다. 방송이 나가고 나서, 전국의 약국에 사람들이 몰렸다. 비타민C를 사기 위해서였다. 서울 종로4~5가 약국들은 비타민C를 사기 위한 사람들로 한 달 내내 홍역을 치러야 했다. 李교수 역시 갑작스러운 비타민C 열풍에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서울대병원 등 종합병원에서 저에게 엄청난 항의를 했어요. 동맥경화•당뇨병 환자들이 병원에 와서...

Sundries: 우물이 마르기까지는 ... (토마스 풀러)

Sundries: 우물이 마르기까지는 ... (토마스 풀러) 우물이 마르기까지는 우리는 결코 물의 가치를 모른다. - 토마스 풀러

진짜 원조 영광 굴비

진짜 원조 영광 굴비 조기풍어로 만선의 노래가락이 울려 퍼졌던 법성포는 조용한 가을을 맞고 있었다. 포구에는 배를 찾아보기 힘들고 바다는 한적하다. 굴비의 명성을 찾아 떠난 여행길. 유서 깊은 어촌은 변해버린 세월을 따라 조금씩 그 모습을 바꿔가고 있다. 도로 확장공사가 진행 중인 법성포 큰길은 정감 있는 갯내음대신 무수한 간판들로 가득 들어 차 잠깐 머리가 혼란스럽다. 원조 굴비. 진짜 영광 굴비. 100% 토종굴비. 순 법성포 굴비. 진짜 원조 굴비. 정말 법성포산 간 굴비. 눈에 거슬리는 큼직큼직한 간판에 디자인은 또 얼마나 거칠고 투박한지 400여 개의 상점이 다닥다닥 붙어 난민촌을 만들어 버린 굴비의 본고장 법성포 이미지는 시작부터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진실은 만들어 지지 않고 스스로 존재할 뿐인데 이렇게 요란스런 문구와 치장이 누구에게 믿음을 줄까 하는 안타까움이 목까지 차오른다. 모든 세속적인 것들이 다 불신의 대상이니 어촌사람들의 몸부림을 알 것도 같지만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굴비는 조기를 염장하여 말린 건어물이다. 굴비에는 재미난 역사가 전해진다. 고려시대 영광에 유배를 당한 이자겸이 왕에게 염장조기를 진상하면서 ‘선물은 보내도 굴한 것은 아니다’라는 뜻에서 굴비(屈非)라 적어 보낸 것이 이름의 유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영광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이지 사실(史實)은 아니다. 생조기를 짚으로 엮어 매달면 옆으로 구부러지면서 마르는데 이 모양이 ‘산굽이’ 같다 해서 ‘굽이’를 굴비라는 한자어로 표시했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국민밥상의 최고 스타로 꼽는 영광굴비는 20년 전만 해도 법성포 칠산 앞바다에서 한해 200톤씩 잡혔다. 봄날 곡우지절에 해풍을 쐬면서 어촌 아낙네들이 굴비를 말리고 다듬어 내다 팔면 남은 계절 온 동네가 풍요를 맛보았다. 한때는 남도의 거상(巨商)들이 영광에 몰릴 정도였으니 굴비는 오랫동안 법성포를 부촌으로 유지시켰던 보배다. 바다환경이 바뀌면서 이제 칠산 앞바다에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