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내음 서려있는 최고의 강장제 알렉상드로 뒤마는 1848년 파리교외에 으리으리한 ‘몬테크리스토 성(城)’을 지었다.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1845년)’이 나온 지 3년 뒤였다. 뒤마는 수많은 예술가들을 초청해 시도 때도 없이 연회를 베풀었다. 직접 요리를 해서 내놓기도 했다. 그는 ‘대요리사전’이라는 책을 쓸 정도로 미식가였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 발자크(1799∼1850)는 식객으로 몬테크리스토 성에 드나들었다. 그는 밤 12시에 깨어나 다음 날 오후까지 하루 15시간 넘게 쓰고 또 썼다. 쓰디 쓴 블랙커피를 하루 40잔 가까이 마셔댔다. 그는 “몬테크리스토 성은 지금까지 인류가 저지른 어리석은 행위 중 최고 매력적인 것”이라며 부러워했다. 발자크는 평생 빚 속에서 살았다. 잠을 자다가도 빚쟁이가 들이닥치면 뒷담을 넘어 도망쳤다. 그만큼이라도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커피와 ‘바다에서 나는 우유’인 굴 덕분이었다. 그는 굴을 요리 중에서 최상으로 쳤으며 한번에 144개까지 먹었다. 그렇다. 서양에서 굴은 스태미나 음식의 상징이다. 사랑의 묘약이다. 날것을 싫어하는 그들도 굴만은 생굴을 즐긴다. 오죽하면 ‘굴을 먹어라, 그러면 더 오래 사랑하리라(Eat oysters, Love longer)’라는 속담까지 있을까. 이름깨나 날리는 남성들은 굴 많이 먹는 것을 은근히 으스댔다. 기록으로 남은 흔적이 그 좋은 예다. 독일의 명재상 비스마르크(1815∼1898)는 한번에 175개를 먹었고, 플레이보이로 이름난 이탈리아의 카사노바(1725∼1798)도 하루 50개씩 거르지 않았다. 프랑스 앙리 4세(재위 1589∼1610)는 식사하기 전에 300∼400개씩 먹었고, 로마황제 위테리아스는 한 번에 1000개까지 해치웠다는 설이 있다. 굴회, 굴물회, 굴무침, 굴보쌈김치, 굴겉절이, 굴깍두기, 굴해초샐러드, 굴조개두부미역, 굴구이, 굴새우구이, 굴숙회, 굴찜, 굴튀김, 굴전, 굴파전, 굴부추전, 굴산적, 굴부추볶음, 굴국, 굴죽, 굴탕, ...